2018년 4월 2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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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절 부모님의 로맨스



부모님들은 다 돌아 가셨지만 그들의 로맨스는 하늘 엄마에게는 항상 메아리로 남아 있는다.
얼마나 살면서 자주 들어야만 했던 잔소리이며 유훈이며 사랑의 종소리였던가!
내용은 이러하다.
1940년쯤  평양에서 살고 계시던  친 할머님께서는 중매쟁이를 시켜  며느리를 얻고자 수소문합니다.
드디어 평원군 어는 고을에 참한 색시를 알고 있는 평원군 중매쟁이와 평양 중매쟁이가 서로 연결이 되어 중매로 이야기가 오고 가고 드디어는 부모님께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기막힌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평원군은 그 유명원 을지문덕 장군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당시는 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는 자유 결혼이 아니라 중매쟁이들이 서로 연결해 주는 중매 결혼이라 서로의 가문에 대해 모르고 혼인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서로를 모르고 혼인 하게 되어 서로의 얼굴을 혼인하는 날  보는 되는  구식 결혼을 하게 됩니다.

혼인 성사가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
하루는 큰 아버님과 저희 아버님께서 사주 단지를 들고 처갓집에 혼인날짜를 받기 위하여 평원군 고을로 갑니다.
날씨는 봄날이라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평양 시내는 벚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처가가 사는 평원군 영유 고을은 널직한 과수원으로 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하였고  사과와 배나무의 잎새들은   한창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저희 외가를  찾아 가기 위한 발걸음이었지요.
옛날에는 결혼식을 하기 위하여서는 한문으로 쓰는 결혼 혼인 서약서 같은 증서가 있다고 전해 집니다.
물론 그 서약서는 다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에 아버님께서는  한문을 잘 쓰는  전문가를 대동시키고 갑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장인 어르신이 되실 저의 외할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고 장인 어르신께서 한문을 많이 아시고 글을 잘 쓰시는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과수원을 갖고 있는 그 고을의 지주이며 선비 집안의  장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보시고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는 젊은이가 사위로 찾아 왔음을 알고 몹시 당황하며 언잖아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으로 얻은 아내를 빗자루로 때렸다고 합니다.
이것아 네가 중매쟁이를 잘못 써서 이 혼사를 망쳐 버렸어!”라고 탄식 하시면서
얼마나 세게 때려는지 머리에서 피가 나며  어머니의 계모이신 두 번 째 부인께서는
일본 경찰에 가서 고발하겠다라고 항의했다고 하네요.
그 당시 상황으로써는 일어 날 수 있는 해프닝 입니다.
또한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말씀하시기를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네가 시집가서 잘 살면 되는 것이야!”
라고 어머님께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후일담이지만  “ 큰아버지가 내 사위였으면 좋겠구나.”라고 아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외할아버지께서는 아버님보다는 저희 큰 아버님께 후한 점수를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맞선을 볼 때
절대로 둘이 가면 안 된다. 혼자 나가야 한다 비교가 되니까..” 라고 하시곤 했지요.
또한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또한 어머니의 친어머니이신 외할머니께서는 평원군에서 소문난 미인이라 어느 날은 외할머니께서 시내에 볼 일 이 보러 갔다가 어느 일본순사가 외할머니의 미모에 반하여  집까지 좇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께서 이 여자는 내 아내이오. 다시는 오지 마시오라고 집 밖으로 쫓아 냈다는 유명한 일화도 남기고 있지요.
그만큼 외 할머니의 미모는 남남북녀처럼 평원군 고을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셨나 봅니다.
꿈속에서라도 한번 뵈었으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곱게 자란 부잣집 딸과 가난하고 어렵게 자란 아들과 처음부터 격에 맞지 않는 신혼 살림을 평양에서 차리게 됩니다.
평양 신 거리는 휘황 찬란하고 눈에 부시는 풍경이었지만 막상 살게 되는 신혼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셋방살이 집이었지요.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께서 친정 고을로 가서 외할아버지께 아버님, 도저히 평양에 있는 단칸 방 셋집에서는 살 수가 없어요. 너무 가난하여 먹고 살기도 힘들고 삭 바느질 까지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달파요라고
하소연 하니 외 할버지께서는  “그럼 내가 집을 한 채 사줄 테니 사위와 따로 이사하여 신혼 사림을 꾸려보거라”    서로 격에 맞지 않은 결혼으로 인해 장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추시지 못하는 할아버지께서는  잘못된 결혼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선뜻 집을 한 채 사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분가 시켜 줄 수는 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된다나 죽거들랑 분가하거라.”라고 잘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모란봉으로 점포가 세 개나 있는 100평 정도의 큰 집으로 친할머니를 모시고 이사를 가게 됩니다..
그러나 6.25동란으로 인하여 그 집은 미군 B-29 폭격으로 많이 부서지게 되고 그마저도 피난으로 인해 영영 그 집과는 이별하는 비운을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서는 6.25 전쟁으로 인해 잠깐 남한으로 피난은 내려 오지만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38선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물론 북한은 장사꾼에게는 상극이라 살 곳이 못 되고 공산당 싫어하는 기독교 집안이라서  집과 재산은  모두 남겨 놓은 채 몸만 달랑 남쪽으로 피난을 올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줄을 꿈에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38선이 원수야!”라고 되뇌시는 어머니의 살아 생전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안녕 대동강!
잘 있어 모란봉아!
 너를 평생 못 잊을 거야!
 대동강 물을 마시며 어린 잔뼈가 굵었고 모란봉을 남산같이 바라보며 꽃다운 청춘으로 피어 올랐는데 이젠 영영 이별이구나 !
잘 있어 대동강
잘 지내 모란봉
어머니께서는 6.25시절 1.4후퇴 때 얼어 붙은  대동강을 건너며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한() 많은 대동강과 모란봉을 살아 생전에는 다시 가 보지 못하고 끝내 운명하셨습니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시내로 나들이 하러 가는 날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에게
여보 당신이 화사한 한복을 입고 나가면 너무 고와서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 보니 좀 허름한 옷으로 입고 외출하오.  그래야 나와 어울려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 보지 않을 테니까.”
라고 하셨다고 어머님께서는  항상 당시 젊은 날의 미모를 그리워하며 자랑하곤 하셨습니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는 부산 피난민 시절을 스케치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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