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4절 부산 피난민 시절
부모님께서
빈 몸을 가지고 갖은 위험을 무릎 쓰고 우여곡절 끝에 피난 내려온 부산 국제 시장은 글자 그대로 미국에서 수송 되어온 온갖 종류의 구호 물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피난민들의 생활 터전이 되었습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이 모든 물자와 사람이 교류하는
곳은 부산 광복 동과 남포 동 옆에 있는 국제 시장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영화 ‘국제시장’에서의
풍경처럼 헐벗고 굶주린 피난민들이 내려와서 미국에서 들어오는 구호 물자와 대마도나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들어오는 밀수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 장터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버님께서는 평양 시절부터 배은 장사 기술로 인해 쉽게 점포를 구하고 온갖 구제 물품들을 팔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일이 시작 되면서 우리의 주인공 하늘 엄마도 이 시장 바닥에서
운명적으로 태어납니다
사람이란
우연과 필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이란 이렇게 자기의 선택과 결정과 상관 없이 부모님에 의해서 인생이 주어지나 봅니다.
운명애(運命愛)를 느낍니다.
.하늘엄마 역시 평생 이 국제 시장의 인연과 크게 벗어나거나 다르지 않게 성장하고 일을 하며 삶을 영위해 가게 됩니다.
삶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인연을 등에 업고 국제시장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하늘
엄마는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지요
“엄마 내가 태어날 때 태몽을 꾸었어?”
“응. 네가 태어난 날은 무척 더웠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너를 만나야 했거든 .
그날은
하지(夏至) 였어. 1957년 닭 띠 해였지 .”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이이를 가졌을 때 동해에서 찬란한 빛이 들어 와 신사임당의
몸 속으로 들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신화 같은 이야기일수도 있겠습니다..
그에게는
국제와 시장이라는 상직적인 시장 바닥의 태몽이 평생 따라다니게 되지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그러나
하늘엄마는 전혀 부산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고작 세 살 때 부모님에 따라 손잡고 아장아장 걸으면서
서울 동숭동 대학로 옆에 있는 한옥집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산은 마음의 고향이고 단지 태어난 베들레헴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행이 유아 때 부모님들이 찍어 두었던 퇴색되어 색이 바랜 사진 더러 남아 있어 그 시절의 초상화를
아련하게 그리고 있지요.
지금 부산이야 100층이 넘는 고층 빌딩들이 밤 바다를 수 놓아 멋진 항구 도시가 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정부가
북한군에 의해 쫓겨간 마지막 보루와 같은 절재 절명의 피난처였지요.
아랫 사이트는 1950년대
피난민 시절의 국제 시장 모습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JOMnN6lVnI&t=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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