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4일 화요일

第7章3節両親の平壌結婚ロマンス、韓国、韓国文化の紹介、韓国文学、韓国小説、、空母小説、、人生とは何か?、人生、ある日の日常、春と夏と秋と冬の旅行、、生命の意味は、人生の本質、毎日、人生読本、生と死、フラストレーションとさまようそして苦痛、運命と人、超越と解脱、生活の総まとめ、思想の集大成、


第7章3節の両親のロマンス




両親は多亡くなったが、そのロマンスは空母は常にエコーに残る。
どのくらいの住みよく聞く必要がしていたしつこいで遺訓であり、愛の鐘だったのか!
内容はこうだ。
1940年ごろ、平壌に住んでおられた親和おばあちゃんは仲人をさせて嫁を得ようと探し回っています。
いよいよ平原郡の凍結村に淑やかな嫁を知っている平原郡仲人と平壌仲人が互いに接続されて仲人に話が来て行って、最終的には、両親が結婚をすることになります。
しかし、内膜を見てみるととんでもない事情が含まれています。
平原郡は、その有名なウォン乙支文徳将軍が生まれた故障でもあります。
しかし、残念ながら、その当時は今のように男女がお互いに愛し、結婚する自由結婚ではなく、仲人が互いに連結してくれる見合い結婚とお互いの家に知らない婚姻をすることになる場合がたまにありました。
私たちの両親も、お互いを知らずに結婚することになり、お互いの顔を婚姻する私を見ている昔ながらの結婚をすることになります。

婚姻成立が熟していくある日
一日は、大きなお父様と私たちのお父様が買っだけを持って妻の実家に結婚の日付を受け取るために平原郡村に行きます。
天気は春と山にはつつじが咲き、平壌市内は桜が満開でした。
先が住んでいる平原郡領有村は板と便利かもしれ果樹園で山にはレンギョウとツツジが満開し、リンゴと梨の葉は盛んに育っていました。
私たちの外を探していくため足取りでした。
昔は結婚式をするためには漢文で書か結婚婚姻誓約書のような行為があると伝えています。
もちろん、その誓約書はすべて漢文になっていたので、お父様は漢文をよく使う専門家を同行させていきます。
 そのお父様は職人年寄りが報われる私の母方の祖父を初めて会うされて職人年寄りが漢文をたくさん知っておら文をよくかけている知識人であるという事実を知ることになって、大きな果樹園を持っている、その村の地主であり、ソンビ家の長男であるという事実を知って驚いている。
しかし、母方の祖父は、父を見て、貧しくて学んだことがない若者が娘婿で見つけたことを知って大慌てでアンじゃないです。
したがって、最初の婦人科死別し、第二の妻で得た妻をほうきで殴ったとします。
「イゴトア君仲人を誤って使ってこの魂邪苦止を台無しちゃった!」と嘆きながら...
どのよう叩きか頭から血が出て母の継母である2番目の夫人は
「日本の警察に行って告発する」と抗議したそうですね。
その当時の状況としては、起きているハプニングです。
また、母方の祖父は母に言われ
「どうせこぼれた水である。
あなたがお嫁に行ってもいい生きるされるものだ!」
と母にシンシンダンブをしました。
後日談だが、「伯父は私の婿だったらいいな」と残念がったと伝えています。
それほどの母方の祖父は父より私達の大きなお父様に高い点数を与えたか表示します。
だからお母さんはお見合いを見たとき
「絶対に二人行けばならない。一人でなければならない比較になるから。」とハシゴンました。
また、このような伝説のような話も伝えます。
また、母の実母である祖母は平原郡で評判の美人とある日は母方の祖母が市内に用事が見に行ったどの日本の巡査が祖母の美貌に反して家まで追っかけてきたします。
だから母方の祖父が「この女性は、私の妻イオ。再び来ない "と家の外に追い出したという有名な逸話も残していますね。
それだけ他祖母の美貌は南男北女よう平原郡村で調べてくれる美人がショトナます。
夢の中でも一度お会いしたらいいのだが...
そして細かく育った金持ちの娘と貧しく困難育った息子と、最初から格に合わない新婚生活を平壌でチャリゲされます。
平壌新距離きらびやかで目にブッシュは風景だったが、いざ生きるようになる新居はみすぼらしいことこの上ないかかり歳家でした。
だから一日は母が実家村に行って祖父に「お父さん、とても平壌のダンカン部屋借家で購入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あまりにも貧しくて暮らすも大変削除縫製までが口に貼ることも難しいほどいじり掘る」と
訴えたら外が父は「それから私は家を一軒買っので義理とは別に理事て新婚士林を設け見だろう」お互い格に合わない結婚のために長女の申し訳ない気持ちを変装かない祖父は誤った結婚を補償する次元でさっさと家にしたまま買っ時と約束します。
しかし、姑は「分家させてくれることはない。私が生きている間はならない。私のお粥ゴドゥルラン分家注ぐ。」と言い切っ言われました。
だからすることができず、モランボンに店舗が三個ある100坪程度の大きな家に祖母を連れて引っ越しすることになります。
しかし、6.25動乱によりその家はアメリカのB-29爆撃で多くの部門られるようになり、そのさえ避難のために永遠にその家とは別れて空を迎えます。
しかし、両親は朝鮮戦争により、ちょっと韓国に避難は降りてくるがこのように身動きできない38度線が起こるとは夢にも思っていません。
もちろん、北朝鮮は商人にとって相克と住むところがないされて共産党が嫌い、キリスト教の家なので家と財産はすべて残したまま体だけぽつんと南に避難を来ることができしかない状況だったが、このように身動きできないお世話になることを夢にでも考えをませんでした。
「38度線が円形わけにはいか!」と繰り返して言う時は、母の生前の姿が善良浮かび上がります。
「こんにちは大同江!
よくありモランボンああ!
 君一生忘れられよ!
 大同江の水を飲んで子供小骨がグルオトとモランボンを南山に見て花の青春にピア上がったもう永遠に別れだね!
よくあり大同江
元気モランボン "
母は6.25時代1.4後退時凍った大同江を渡ってお別れを言います。
両親はそのようにした(恨)多くの大同江とモランボンを生前には再びが見られず終了運命ました。
一度このような話を聞かせていただいたこともありました。
平壌から市内に外出しに行く日のお父様はお母様に
"ハニー、あなたが豪華な韓服を着ていけば、あまりにもゴワソ他の人が多見てみるとちょっとみすぼらしい服に着て外出ハオ。よう記載されて似合って、他の人が見てないから。」
とされたと母はいつも当時の若い日の美貌を欠場し自慢したりしました。
さて、次の時間には、釜山の避難民時代をスケッチしてみましょう。

7장 3절 부모님의 평양결혼 로맨스 ,한국, 한국문화 소개 ,한국문학, 한국소설, , 하늘엄마 소설, ,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 어느 날의 일상,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여행, , 삶의 의미,삶의 본질 , 일상 ,인생독본, 삶과 죽음, 좌절과 방황 그리고 고통,운명과 천명, 초월과 해탈, 삶의 총정리, 사상의 집대성,


7장3절 부모님의 로맨스



부모님들은 다 돌아 가셨지만 그들의 로맨스는 하늘 엄마에게는 항상 메아리로 남아 있는다.
얼마나 살면서 자주 들어야만 했던 잔소리이며 유훈이며 사랑의 종소리였던가!
내용은 이러하다.
1940년쯤  평양에서 살고 계시던  친 할머님께서는 중매쟁이를 시켜  며느리를 얻고자 수소문합니다.
드디어 평원군 어는 고을에 참한 색시를 알고 있는 평원군 중매쟁이와 평양 중매쟁이가 서로 연결이 되어 중매로 이야기가 오고 가고 드디어는 부모님께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기막힌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평원군은 그 유명원 을지문덕 장군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당시는 지금처럼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는 자유 결혼이 아니라 중매쟁이들이 서로 연결해 주는 중매 결혼이라 서로의 가문에 대해 모르고 혼인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저희 부모님 역시  서로를 모르고 혼인 하게 되어 서로의 얼굴을 혼인하는 날  보는 되는  구식 결혼을 하게 됩니다.

혼인 성사가 무르익어 가는 어느 날
하루는 큰 아버님과 저희 아버님께서 사주 단지를 들고 처갓집에 혼인날짜를 받기 위하여 평원군 고을로 갑니다.
날씨는 봄날이라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평양 시내는 벚꽃이 만발하였습니다.
처가가 사는 평원군 영유 고을은 널직한 과수원으로 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하였고  사과와 배나무의 잎새들은   한창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저희 외가를  찾아 가기 위한 발걸음이었지요.
옛날에는 결혼식을 하기 위하여서는 한문으로 쓰는 결혼 혼인 서약서 같은 증서가 있다고 전해 집니다.
물론 그 서약서는 다 한문으로 되어 있었기에 아버님께서는  한문을 잘 쓰는  전문가를 대동시키고 갑니다.
 그때 아버님께서는 장인 어르신이 되실 저의 외할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고 장인 어르신께서 한문을 많이 아시고 글을 잘 쓰시는 지식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과수원을 갖고 있는 그 고을의 지주이며 선비 집안의  장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보시고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는 젊은이가 사위로 찾아 왔음을 알고 몹시 당황하며 언잖아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으로 얻은 아내를 빗자루로 때렸다고 합니다.
“ 이것아 네가 중매쟁이를 잘못 써서 이 혼사를 망쳐 버렸어!”라고 탄식 하시면서…
얼마나 세게 때려는지 머리에서 피가 나며  어머니의 계모이신 두 번 째 부인께서는
“일본 경찰에 가서 고발하겠다”라고 항의했다고 하네요.
그 당시 상황으로써는 일어 날 수 있는 해프닝 입니다.
또한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말씀하시기를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네가 시집가서 잘 살면 되는 것이야!”
라고 어머님께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후일담이지만  “ 큰아버지가 내 사위였으면 좋겠구나.”라고 아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외할아버지께서는 아버님보다는 저희 큰 아버님께 후한 점수를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맞선을 볼 때
“절대로 둘이 가면 안 된다. 혼자 나가야 한다 비교가 되니까..” 라고 하시곤 했지요.
또한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또한 어머니의 친어머니이신 외할머니께서는 평원군에서 소문난 미인이라 어느 날은 외할머니께서 시내에 볼 일 이 보러 갔다가 어느 일본순사가 외할머니의 미모에 반하여  집까지 좇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께서 “이 여자는 내 아내이오. 다시는 오지 마시오”라고 집 밖으로 쫓아 냈다는 유명한 일화도 남기고 있지요.
그만큼 외 할머니의 미모는 남남북녀처럼 평원군 고을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셨나 봅니다.
꿈속에서라도 한번 뵈었으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곱게 자란 부잣집 딸과 가난하고 어렵게 자란 아들과 처음부터 격에 맞지 않는 신혼 살림을 평양에서 차리게 됩니다.
평양 신 거리는 휘황 찬란하고 눈에 부시는 풍경이었지만 막상 살게 되는 신혼 집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셋방살이 집이었지요.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께서 친정 고을로 가서 외할아버지께 “아버님, 도저히 평양에 있는 단칸 방 셋집에서는 살 수가 없어요. 너무 가난하여 먹고 살기도 힘들고 삭 바느질 까지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달파요”라고
하소연 하니 외 할버지께서는  “그럼 내가 집을 한 채 사줄 테니 사위와 따로 이사하여 신혼 사림을 꾸려보거라”    서로 격에 맞지 않은 결혼으로 인해 장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추시지 못하는 할아버지께서는  잘못된 결혼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선뜻 집을 한 채 사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는 “분가 시켜 줄 수는 없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안 된다.  나 죽거들랑 분가하거라.”라고 잘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모란봉으로 점포가 세 개나 있는 100평 정도의 큰 집으로 친할머니를 모시고 이사를 가게 됩니다..
그러나 6.25동란으로 인하여 그 집은 미군 B-29 폭격으로 많이 부서지게 되고 그마저도 피난으로 인해 영영 그 집과는 이별하는 비운을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부모님께서는 6.25 전쟁으로 인해 잠깐 남한으로 피난은 내려 오지만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38선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물론 북한은 장사꾼에게는 상극이라 살 곳이 못 되고 공산당 싫어하는 기독교 집안이라서  집과 재산은  모두 남겨 놓은 채 몸만 달랑 남쪽으로 피난을 올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이렇게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줄을 꿈에나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38선이 원수야!”라고 되뇌시는 어머니의 살아 생전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안녕 대동강!
잘 있어 모란봉아!
 너를 평생 못 잊을 거야!
 대동강 물을 마시며 어린 잔뼈가 굵었고 모란봉을 남산같이 바라보며 꽃다운 청춘으로 피어 올랐는데 이젠 영영 이별이구나 !
잘 있어 대동강
잘 지내 모란봉”
어머니께서는 6.25시절 1.4후퇴 때 얼어 붙은  대동강을 건너며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한(恨) 많은 대동강과 모란봉을 살아 생전에는 다시 가 보지 못하고 끝내 운명하셨습니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시내로 나들이 하러 가는 날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에게
“여보 당신이 화사한 한복을 입고 나가면 너무 고와서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 보니 좀 허름한 옷으로 입고 외출하오.  그래야 나와 어울려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 보지 않을 테니까.”
라고 하셨다고 어머님께서는  항상 당시 젊은 날의 미모를 그리워하며 자랑하곤 하셨습니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는 부산 피난민 시절을 스케치해 보겠습니다.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한국, 한국상품소개, 토끼 스마트폰 실리콘케이스,안전과 청결을 지켜주는 실리콘 핸드폰케이스










구글소설블로그: 7skymom.blogspot.com
구글상품블로그: 77skymom.blogspot.com
이메일 : 7skymom@naver.com



안녕하세요
한국 중소기업 제품들 중에서  제품을 소개합니다.

저희 회사는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을 해외에 소개하며
한국의 문화를 팝니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이 메일로 문의해 주세요
자세한 카타로그와 정보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귀하의 성원이 더 좋은 글을 만들어 냅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하늘 무역
조광일
7skymom@naver.com